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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 JUNG IN

[기획자 프로필] 


독립문화기획자 | 브랜딩 | 울산・부산


 


오래된 미래도시



영도는 마치 오래된 미래도시


영도에는 지나간 유행이란 없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토요일 오전 9시50분. 거리에는 아직 하루를 시작하지 않은 가게가 많지만 청학시장은 다르다. 아침부터 정성스레 신발을 진열하고 계신 사장님이 계시다. 내 눈에는 유행이 지나서 아무도 안 신을 것 같은 신발도 사장님은 금방이라도 제 주인을 만날 신발처럼 귀하게 대하고 있다. 그 모습에서 영도를 읽는다. 영도에는 지나간 유행도, 덜 소중한 물건도 없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방울이 영도 경사로를 훑고 내려가 바다로 떠내려간다. 저 바닷물은 다시 빗방울이 되어 영도에 돌아올 것이다. 거대한 순환의 섬에서 영영 지나간 유행이란 없다는 말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영도에는 환대의 노란색이 있다.

11월의 어느 좋은 날에 장애인 자립축하파티가 열렸다. 시설을 벗어나 지역사회로 자립해 생활하게 된 장애인이 파티의 호스트가 되었다. 예술가들과 함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축하공연 무대에 서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의 친구들과 동네 주민들이 힘껏 축하하고 노래를 같이 부르며 함께 만든 파티의 마무리. 응원의 말이 적힌 여러 개의 메시지카드에서 호스트에게 주고 싶은 말을 골라 전달하고는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다함께 노란 풍경을 완성했다. 그는 문 앞에 풍경을 걸어두고는 바람이 불어 소리가 날 때마다 오늘의 얼굴들과 응원을 떠올리겠다고 했다. 그 모습에서 다시 한번 영도를 읽는다. 영도는 '내 이웃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나와 함께 이 도시를 살아가는 이웃은 누가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들인지, 어떤 이야기를 가진 '나'인지. 그리고 그 이웃들과 함께 노란 경험을 쌓아간다. 응원, 환대, 축하, 그리고 추억이 서로 다른 노란 빛으로 안녕을 전한다. 익명의 도시에서 나고 자란 우리가 잃어버린, 내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다름아닌 사랑하는 방법


지역에서 새로운 바람을 만드는 기획자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예민하게 읽는 감각이 필요하다. 기획자가 지역과 도시를 읽고 발견한 가치를 더 큰 바람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기획자의 도시기록실험'이라는 부제목을 단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런데 기획자의 눈으로 도시를 읽는다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사실 진행하는 내내 시원한 답을 내리지 못했었다. 여름부터 초겨울까지 영도를 수없이 드나들었다. 영도의 첫인상부터 매번 방문할 때마다 느꼈던 감정은 '사랑'이었던 것 같다. 이곳에 있었던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에 관한 사랑, 세월이 이곳에 남긴 흔적과 현재로 이어져온 단단한 일상에 관한 사랑, 그것들을 함께 겪어내고 있는 내 이웃을 향한 사랑. 도시에 묻어난 사랑들이 읽혔다.


사람들 속에서 고립되어버린 우리가 다시 세운 유토피아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한다. 영도에서 그 오래된 미래를 엿본다.